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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원자로

by 지낭쓰 2023. 5. 31.

연쇄반응 물질을 찾아라

 

레오 실라드(1898~1964) 와 엔리코 페르미(1901~1954) 는 1942년 12월 2일 시카고 대학교 운동장 스탠드 아래의 사용되지 않는 스쿼시 코트에 6톤의 우라늄과 50톤의 신화 우라늄, 그리고 400톤의 흑연벽돌로 이루어진 페르미 파일에서 우라늄 원자핵의 연쇄 핵분열 반응을 실험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기술을 완성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러더퍼드는 원자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원자핵을 부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아주 작아서 이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것은 달빛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여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해 있던 실라드였다. 실라드는 우라늄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1934년 3월 12일 중성자를 이용한 원자핵 변환에 관한 특허 신청서를 제출했다. 후에 그는 연쇄반응에 대한 설명을 첨가하여 그것을 수정했다.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에 의해 우라늄 원자의 핵분열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어떤 실험도 실라드가 제안한 연쇄반응의 가능성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한꺼번에 엄청난 에너지가 나와 원자폭탄 제작도 가능할 것이엇다. 

 

페르미는 중성자가 원자해과 충돌해서 깨트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속도가 너무 빠른 중성자는 원자핵에 흡수되지 않고 원자핵을 그대로 지나 간다. 중성자의 속도를 감속시키는 데는 중수소가 효과적이었따. 그러나 중수소의 생산은 어려운 일이었다.

 

페르미 파일 속에서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실라드는 중수소 외에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다른 물질을 찾고 있었다. 순수한 흑연이 그 일을 했다. 독일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던 실라드는 대부분의 흑연이 약간의 붕소를 포함하고 있고 이 붕소가 중성자를 흡수하여 연쇄반응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페르미는 붕소를 포함하지 않은 흑연이 이상적인 감속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실라드와 페르미는 대학 운동장 스탠드 아래의 사용되지 않는 스쿼시 코트에 우라늄과 흑연을 차례로 쌓아 파일을 만들었다. 페르미 파일은 스쿼시 코트를 가득 채웠다. 1942년 12월 2일 페르미와 실라드,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은 중성자의 방출을 감지하는 측정장치들이 있는 관람대에서 실험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리더 우라늄의 분열 실험이 시작되었다. 핵분열이 진행됨에 따라 중성자의 세기가 2분마다 두배로 되었다. 페르미는 1분 또, 1분, 또 1분을 기다려 모두 4분 30초를 기다린 후에 안전막대를 파일 속에 넣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과학자들은 포도주를 따라 들고 최초의 원자핵 연쇄반응을 축하했다.

원자폭탄과 맨하탄 프로젝트

 

미국이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한 프로젝트를 맨하탄 프로젝트라고 한다. 원자폭탄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실라드는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여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편지를 쓰도록 했고 그 결과 맨하탄 프로젝트가 실시 되었다.

 

맨하탄 프로젝트의 목적은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자폭탄을 만들기 전에 독일이 항복하고 말았다. 따라서 더 이상 맨하탄 프로젝트를 계속할 명분이 없어졌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와 정치가 들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면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며 누구도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느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후에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다.